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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애상02

1차.커뮤 2017. 3. 25. 22:37

애상 02

, 아무도 없다. 그것이 그의 지평선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혼자라는 말의 동의어는 죽음이다. -빅토르 위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가와라와 오이카와는 파트너가 되었다. 늘 같은 조에 편성되어 같은 임무를 맡았고, 같이 생활하는 시간이 늘었다. 함께 생활하며 오이카와를 알아가고 조금 익숙해지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행이었다. 스가와라는 애초에 관리보다 실전 팀에 맞춰 육성되어왔고, 어쩌면 성향 같은 건 형성되기 그 이전부터 계획에 맞춰 자라온 인재 양성 프로그램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첫 임무 후 역겨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뼈저리게 들었으나 이 곳은 그에게 전부였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는 그에게 조직 외엔 갈 곳이 없었다. 성향따위는 애초에 계획의 범위에 들어갈 수 없는 부분임을 이미 그도 알고 있었기에, 그 일 이후, 트라우마에 한동안 현장을 나가길 두려워했다. 팀이 짜지면 곧 다른 임무 수행을 한다는 뜻이었는데, 우연히도, 그리고 다행히도.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와 같은 팀이 되고부터는 스가와라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무런 말을 먼저 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먼저 말했다.

 

 “스가와라 군이 먼저 들어가서 판 깔아놓으면, 오이카와씨는 마무리 하는 걸로 할게. 어때?”

 

 좋은 제안이었다. 아니 승낙할 수 밖에 없는 제안임에 틀림없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이카와는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파트너. 스가와라는 피식 웃었다.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스가와라는 여태까지 걱정했던 일들이 오이카와로 인해 말끔히 사라졌다. 그는 완벽하게 작전에 돌입했고, 빈틈없이 상대의 눈을 속였다. 결정적인 순간, 여유롭게 문을 열고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오이카와를 보며, 그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바통 터치의 의미를 담은 하이파이브와 함께 방을 나섰다. 오이카와는 목표물의 손을 말끔히 분지르고 다리를 부러뜨렸다. 물론 입에는 자신의 손수건을 쳐 박은 채. 아마, 스가와라를 배려한 행위였을 것을, 스가와라는 어렴풋이 눈치챘을 것이다. 나가려는 스가와라의 발이 오이카와의 목소리로 인해 멈춘다.

 

 “잠깐 스가쨩

 “?”

 “여기. 받아.”

 

 이어폰이었다. 목표물은 무언가에 덮인 상태로, 오이카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야? 하는 물음에 오이카와는 대답했다.

 

 “조금, 시끄러울 지도 모르거든.”

 

 스가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준 이어폰을 끼고 음량을 최대로 키웠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마 그 날부터, 스가와라는 작전 후 노래를 듣는 걸 즐겼다. 오이카와로 인해 생긴 취미 내지 흥미 따위였다. 건조한 일 처리에 환기를 불어넣어주는, 그런 흥미 같은 것.

 

 언젠가, 오이카와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왜 이곳에 들어오게 됐어? 오이카와는 대답하지 않다가 글쎄, 왜 들어오게 됐을까라는 애매한 말과 함께 스가와라에게 웃어보였다. 후회한 적 없어? 한참을 고민하는 듯한 오이카와의 옆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이 곳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까. 따위의 상념에 잠겨있는데, 오이카와가 대답했다. 널 만나지 않았으면, 후회하지 않을 뻔 한 거같네. 무슨 의미야? 그런 게 있어. 끝까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대답이랍시고 내뱉더니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서는 오이카와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도, 나도 후회하지 않을 뻔 했어.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그랬을거야.

 

 

* * *

 

 

 사무실 분위기가 분주하다. 안좋은 일이 생기기라도 한 것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물었지만 모두가 모르겠다고 하며 자신이 할 일을 찾을 뿐이었다. 팀장에게서 팀원들 호출이 있어 담당 사무실로 향했다. 오이카와가 보이지 않아 그를 찾았다. 무슨 일 있어요? 오이카와는요? 하는 물음에 팀장은 산더미같이 많은 서류들을 책상에 쏟아냈다. 그리고 대답했다. 곧 오겠지. 팀장은 평소와 묘하게 달랐다.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사무실 전체에 흐르고, 팀장은 서둘러 이 자리를 뜨고 싶다는 듯이 다급하게 말했다.

 

 “윗선에서 처리하라고 내린 사건이 갑자기 늘어났어. 일주일 내 해결해야 할 것들이니까, 맡은 일은 자기 선에서 알아서 끝내도록. 해산해.”

 

 스가와라의 앞에 놓여진 서류를 펼쳐보니 사건 처리 명단에 오이카와의 이름은 없었다. 늘 함께했던 이름이 빠지니 어색한게 먼저. 그리고 이게 맞는 거지라는 생각이 그 다음. 스가와라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가 없어도, 자신은 해내야 했다. 그것이 자신의 임무였기에.

 

 오이카와는 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화를 하기를 열 번 쯤 되는 때 끊으려고 하는 찰나, 저쪽 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끊으려는 손을 되잡아 전화기를 들고 반대쪽에 있을 오이카와를 불렀다.

 

 “오이카와?”

 “. 스가와라

 “뭐야, 왜 전화는 안받고

 “좀 바빠서. 나 없이도 잘 하고 있어?”

 “이제, 나가려고.”

 

 떨려. 조금 많이. 되도록 마지막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말은 너에게 너무 어리광이 될까 해서 말하지 못하겠어. 하고 싶은 말을 목 뒤로 삼켜낸다. 그리고 오이카와의 음성을 듣는다.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 많이 늘었네. 잘 할 수 있지?”

 “. 당연하지.”

 “있잖아 코우시-”

 

 오랜만에 듣는 자신의 이름에 살짝 목이 먹먹해진다. 여기에 있을 동안에는 자신은 다 지우고 살았는데, 자꾸만 네가 내 자신을 붙잡는다. 지워져가는 나를 끌어올린다.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데, 전화가 끊겼다. 전화 하지 말 걸 그랬나, 후회하다가도 다시 전화기로 손이 간다. 오이카와에게 전화를 건다. 연속해서 들리는 신호음이 마음을 애타게 한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안내음이 울리고 전화기를 주머니에 깊숙이 집어넣는다.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혼자 임무를 맡은 것이 떨려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뛴다. 더 빠르게.

 

 코르셋이 조인다. 어색한 걸음걸이는 누가 봐도 남성임을 알아볼 수 있을 듯 했다. 아니 아무리 봐도 남자인데요, 하는 대꾸를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무도회장이라 분위기가 어두울 것이고, 사전 답사를 해보니 그 정도 조명이면 들킬 일이 전혀 없으니 적당히 목표물에 접근해 정보 몇 가지만 캐내면 될 일이라고 전해들었다. 좀 불편하고 어색하긴 해도, 직접 피를 보지 않을거란 생각에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여전히 어색한 걸음걸이로 어기적거리는 걸 어떻게든 해보려고 무릎에 힘을 줬다. 그리고 치마 속 가터벨트에 끼워진 총을 꺼내 총알이 잘 채워져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완벽한 임무 완료를 위한 준비는 완전히 끝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것. 스가와라는 핸드백에 들어있는 이어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이 이어폰을 끼고 여유롭게 걸어나오는 자신을 상상했다. 오늘도 일이 잘 끝나길, 그렇게 바랐다.

 

 무도회장은 이미 전해들은 말 대로 어두컴컴하고 은은한 조명만이 조금씩 비출 뿐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목표물을 탐색했다. 스가와라의 은색 머릿결이 조명에 비추자 은은하게 빛났다. 목표물 확인. 접근하겠습니다.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한 후 빠르게 멀리 있는 사내에게로 접근했다. 핸드백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리고, 자연스레 핸드백을 잡으려는 두 손이 맞닿는다. 5. 5초면 충분했다. 감사의 의미로 짧은 목례를 한 스가와라는 사내의 손을 농염하게 쓰다듬었다. 5, 4, 3, 2, 1. 스가와라의 가늘고 흰 손목을 끌어당긴 사내에게 한껏 눈웃음 지으며, 속으로 미션 클리어를 외쳤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완벽해진다.

 

 사내는 이미 스가와라가 안내받았던 내부 구조로 이동했다. 모든 것이 예상에 들어맞았고, 변수란 없을 것임을 확신했다. 안쪽으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다가 스가와라는 잠시 멈칫했다. 여긴 구조상 존재하지 않는 곳인데. 왜 그러는거지? 문제있나? 사내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무래도 적당히 하다가 돌아가면 될 일이지. 스가와라는 간단하게 생각했다. 떨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사내는 복도 끝 방에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그 안으로 저를 밀어넣었다. 스가와라가 몸을 피하자 손으로 스가와라를 우악스럽게 잡아당겨 식탁같은 딱딱한 물건 위에 앉혔다. 반항이나 대처를 할 틈도 없이, 사내는 스가와라의 치마를 찢었다. 그리고 드러난 새하얀 허벅지와 총을 보고는, 예상했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

 

 “어디서 쥐새끼가 기어들어왔어?”

 

 사내의 미간이 깊게 굴곡지더니 이내 가터벨트에 매여있던 총을 빼어들었다. 매뉴얼대로 하면 된다. 매뉴얼대로. 차분하게 지금까지 배웠던 매뉴얼을 하나부터 읊었다. 총은 빼앗긴 상태. 상대를 더 흥분시키면 위험해진다. 일단 반항하지 않고 상대의 말을 듣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사내는 또 예상범위를 넘어섰다.

 

 “나는, 네가 어디서 나온 쥐새낀지는 궁금하지가 않아.”

 “하아

 “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내겐 중요한 게 아니야

 “, 뭘 원하는지 말해.”

 “나는 밑에만 잘 조이면, 그걸로 되거든.”

 

 사내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스가와라를 하나하나 무너뜨렸다. 그는 스가와라의 밑을 힘으로 벌리더니 위의 옷가지를 가차없이 찢었다. 또 토기가 몰려온다. 금방이라도 뱉어내고 싶은 것들이 안에서 끓어올랐다. 여기서 도발했다간 오히려 정보를 뺏길 위험이 컸고, 가만히 있기엔 두려웠다. 조직에서 몇 년간 훈련받은 스가와라는 자신을 버려야했다. 사내의 게걸스러운 혓바닥이 스가와라의 몸을 훑었다. 흐으으윽, 입에선 울분인지 모를 신음이 새어나오고 금방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다. 오이카와가 같이 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무섭다. 무섭고 두렵다. 처음 목표물을 쐈을 때 눈을 감았던 것처럼 눈을 꽉 감고 뜨지 않았다. 그럼 조금 나아질 까 해서. 이맘때쯤이면, 아마 다른 때였다면 오이카와가 여유롭게 입구로 걸어 들어올 그 타이밍일 텐데.

 

 그 때, 총격이 울려퍼졌다. 문이 열리고, 오이카와가 눈에 들어왔다. 사내의 머리를 발로 짓밟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핸드백에서 이어폰을 꺼내 스가와라에게 던졌다.

 

 “끼고 있어. 눈 감고, 내가 뜨라고 할 때까지 절대 뜨지 마.”

 “죽이지, 죽이지 말랬어. 죽이지 말고, 정보

 “내 말대로 하자 코우시. 그렇게 하자. 내 말 듣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스가와라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최대로 튼다. 틈 사이로 울리는 총격이 박자에 맞춰 합을 이룬다. 얼굴로 무언가가 튄다. 뜻뜨미지근한 촉감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데 오이카와의 손이 붙잡는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액체를 닦아낸다. 가만히 있어.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안아올렸다. 그리고 떨리는 스가와라의 몸을 다독이며, 현장을 뜬다. 스가와라의 귀에 울려퍼지는 음악은 헨델의 울게 하소서. 슬픔 넘쳐서 눈물이 되어 내 마음 아픔을 다 씻게 하소서. 내 마음의 아픔 잊게 하옵소서. 고통의 굴레 벗기소서. 고통의 굴레에서, 너와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