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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애상03

1차.커뮤 2017. 4. 14. 19:22

애상 03

고독은 이미 습관처럼 익숙해졌다. 고독보다 더 고약한건 나 자신에 대한 증오심이다. -존 어빙

 

 

 “미쳤어? 죽이지 말라고 누누이 말한 건 어디로 들어쳐먹은거야!”

 

 살갗이 부딪히는 소리가 사무실 안 가득 울려퍼졌다. 동시에 오이카와의 고개가 힘없이 돌아간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가 곁눈질로 오이카와의 상태를 살폈다가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이어서 자신에게도 손찌검이 올 것을 예상했는지 몸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간다. 흐읍, 눈을 꼭 감고 숨을 참는데 한참을 지나도 조용하다.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일입니다.”

 

 눈을 슬그머니 뜨니 오이카와가 팀장의 손목을 잡아 저에게로 오는 손을 멈췄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피의 잔해와 총소리에 손이 떨린다. 오이카와는 그 사이에 스가와라의 상태를 확인했는지 제 등 뒤로 스가와라를 이끌고 한쪽 손으로 스가와라의 손을 꽉 잡았다. 괜찮다는 듯이. 무서워 말라는 듯이. 그리고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하는 듯이. 그럴수록, 무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스가와라를 억누른다. 도움이 되지 못 할망정,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 더하여 자신을 대신해 책임을 지려하는 오이카와까지, 뭐하나 제대로 해결된 일이 없이 얽히고 설킨 매듭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 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런데도, 오이카와에게 잡힌 손을 빼낼 수가 없다. 떼어낼 수가 없다. 오히려, 손에 힘을 꽉 쥔다. 땀이 흥건히 젖어 오이카와의 손을 적시는데도, 오이카와 또한 떼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의미였으면. 내가 너의 손을 놓치기 싫은 것처럼, 너도 나를 놓기 싫다는 의미였으면.

 

 “미안, 내가 미안해. 그러게 왜 와서

 “너였으면,”

 “…….”

 “너였으면, 안왔을 것 같아?”

 

 아니. 달려갔을 거야. 미친 듯이 뛰어서 다 죽여버렸을 거야. 너도 같은 생각으로 달려온 것일까. 침묵으로 가득 찬 공기가 무겁다. 그런데도 먼저 다가갈 수도, 멀어질 수도 없다. 딱 그 정도의 선을 넘지 못한다.

 

 “아니면, 미안해하지 마 스가쨩.”

 “하아.”

 “내가 한 거니까, 이제 어제 일은 생각도 하지 말고,”

 “...”

 “이제 무서워하지도 말고. 다 끝났어. 다 끝났으니까, 그러니까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린다. 그 차이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타듯 위태롭다. 마치 우리의 관계처럼. 그래도,

 

 “밥이나 먹을까?”

 “그래.”

 

 괜찮은 척. 밥을 먹는다. 가슴이 뛴다. 또 애써 아닌 척, 뭐 하나 해내지 못한다. 모든 감정은 또다시 미련으로 부패한다. 오이카와도 숟가락을 든다. 그의 시선이 스가와라의 모든 행동에 뒤따랐음을 스가와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것이 그와 그의 마지막 식사라는 것 또한.

 

 알았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 * *

 

, 아무도 없다. 그것이 그의 지평선이었다. 그는 혼자였다. 혼자라는 말의 동의어는 죽음이다. -빅토르 위고

 

 일주일 째, 오이카와에게서 연락이 없다. 전화는 며칠 내내 꺼져있다는 음성만 반복되었고, 그렇다고 사무실에 보이는 것도, 스가와라에게 따로 찾아온 일도 없이 그렇게 사라졌다. 혹시나 해서 일을 마치고 자주 가던 식당을 돌고, 같이 다녔던 거리를 한 번 더 돌아봤지만 오이카와는 보이지 않았다. 같은 팀원들에게 물어봐도 행적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스가와라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다 닳아 끝이 뭉뚝해질 때 까지, 손톱을 뜯고, 또 뜯었다. 어디 가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나한테 연락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건지, 한 마디 언질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가도 자신이 그에게 그 정도 존재밖에 되지 않았나 혼란스러웠다가, 이번엔 왜 내가 오이카와를 걱정하고 생각해야 하는지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으려 하다가. 오만가지 생각이 섞여 스가와라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이카와와 함께한 시간이, 그리고 그의 호의가, 그리고 그를 향한 마음이, 그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결국 스가와라가 찾은 곳은 본부실 앞. 오이카와가 어딨냐는 얘기 따위로 말을 꺼내면 이제까지의 일도 그러할뿐더러,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쓴다는 이유로 조직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것임을 알면서도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팀장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방법은 직접 묻는 것 하나뿐이었다. 한참 문고리를 만지작거리다 손에 힘을 주려는 순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지시를 내리려는 상황인 듯 했다.

 

 “그쪽에서도, 한 명 보내는 걸로 합의 보기로 했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다 자기가 자처한 일이야. 그렇게 일 깔끔하게 처리하다가 뒤끝만 깔끔했어도 모를 뻔 했지.”

 “, 그래서 다 덮는다고요. 전부?”

 “그게 최선이야. 걔들도 우리도 먹고 살아야지.”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보통 상황 지시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겠거니, 하며 다시 문고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다음 들려오는 명령에, 스가와라의 온 신경이 마비되었다.

 

 “오이카와 얘. 빠른 시일 내로 사살해.”

  

 스가와라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팀장의 마지막 말이 스가와라의 귀에 반복적으로 울려퍼졌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참고 밖으로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 오이카와에게 다시 한 번 전화를 건다. 애꿎은 신호음에 맞춰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구토를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다. 여태까지 오이카와에 의해 감춰진 두려움과 공포, 역겨움 내지 불안이 서서히 스가와라의 내면을 부수기 시작한다. 전부, 나 때문이다. 내가 제 몸 하나 지키지 못해서, 내가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그리고 하필이면 너와 함께한 게 나라서.

 

 숨이 차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 오이카와의 흔적을 찾아야했다. 자료실을 뒤져 오이카와의 정보를 찾았지만 오이카와라는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이도, 사는 곳도, 가족도. 그렇게 몇 년간을 같이 지낸 스가와라도 오이카와라는 이름 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날 오이카와를 알아가고 싶다는 스가와라의 바람은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꿈같은 이야기였음을,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은 사치였음을 현실은 말했다. 다시 한 번. 잔인하게도.

 

 하루종일 한 끼도 먹지 못한 채로 오이카와가 했던 말들, 갔던 길, 핸드폰에 남아있는 정보를 샅샅히 파해쳤지만 결과는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갔다. 수없이 많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이름조차 알아내지 못한 제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연락 한 통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오이카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오이카와의 이름을 부른다. 오이카와, 너에게 난 어떤 존재였을까. 그리고 나에게 넌 어떤 존재였을까. 너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날을 상상해본 적이 없는 나는 너무나도 괴롭고, 아프다. 눈물이 옷 소매를 축축하게 적신다. 네가 보고싶다. 한 번만 너를 볼 수 있다면 그동안 넘지 못했던 선을 넘고 너에게 달려가 안길 거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담긴 미련도 오이카와로부터.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모든 감정도 모두 오이카와로부터. 알 수 없는 언젠가부터, 스가와라의 모든 것은 오이카와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끝을 내줄 너를 찾는다.

 

 한참을 울다가 핸드폰 진동에 급하게 화면을 켰다.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온 한 통의 전화.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러 소리쳤다. 오이카와? 하지만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ARS 안내메세지. 한숨을 쉬며 끊으려다가 멈칫 손을 멈춘다. ‘스가와라님께 온 음성메세지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침을 꿀꺽 삼키고 확인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잠시후 들려오는 목소리에 또 다시 울음이 왈칵 터진다.

 

코우시. 오이카와씨랍니다-”

 

 나를 이토록 애달프게 하는 너를 이렇게 찾는 이유를, 스가와라는 비로소 알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