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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스가]애상01

1차.커뮤 2017. 3. 24. 23:23

애상

 

사랑이란 지도와 나침반 없이 떠나는 모험이며, 신중해지는 순간 길을 잃는다. -로맹 가리

 

 

 “나이스 상쾌군! 오늘도 죽이네~”

 “기본이지.”

 “자 뒤처리는 내가 할 테니까 나가있어.”

 “적당히 하고 빨리 나와. 밥이나 먹자

 

 사건번호 B26, 스가와라는 총구를 겨눈 손을 거두어 유유히 걸어나간다. 조용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이어폰을 꺼내 볼륨을 최대로 키웠다. 곡명은 바흐의 월광. 피아노 소리가 귀에 은은히 울려펴진다. 모든 잡음이 차단된 상태. 스가와라는 지금처럼 작업을 끝낸 후 여유를 만끽하는 시간을 즐겼다. 새빨간 피로 물드는 안쪽의 상황은 뒤로한 채, 휘파람을 휘휘 불며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린다. 3, 2, 1. 정확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작전이 완전히 끝마쳤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통화버튼을 눌러 상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한 발 빠르게 상대의 할 말을 빼앗는다.

 

 “미션

 “미션 클리어!”

 “? 안되지 그거 오이카와씨가 할 말이라고?”

 “얼른 나오기나 해. 배고파.”

 “앞이나 봐주지?”

 

 정장의 소매 끝자락 하나까지 어디하나 헝클어진 데 없이 완벽한 옷 차림새를 한 사내가 스가와라를 향해 손을 휘휘 흔들었다. 스가와라가 피식 웃으며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자 이내 손을 내리더니 복도 끝에서 뛰어와 스가와라에게 와락 안긴다. 좀 떨어지라는 소리에도 들은 척 만 척 하다가 뭔가 할 일이 남았는지 핸드폰을 유심히 바라본다. 스가와라의 시선도 그의 핸드폰으로 향했다. 한참을 뭔가 찾는 것 같더니 스가와라에게 핸드폰을 들이민다.

 

 “오늘은 카츠동 먹자! 오이카와씨가 좋은 곳 알아놨지

 “뭐야, 이거 보여주려고 그렇게 찾은거야? 너 작전 완료했다고 보고는 했어?”

 “, ! 맞다맞다. 상쾌군 조금만 기다려

 

 허겁지겁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임무 완료를 보고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본다. , 아무리 봐도 비밀조직 요원이라고 생각하긴 힘든데, 역시 안목이 있는 건가? 어느 누가 이런 애를 조직원이라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 따위를 하며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도, 남들보다는 안전하다는 소리 아닐까. 둘은 오늘도 무사했다. 그들이 오늘처럼 무사한 날이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다. 그들은 일본의 국가 비밀조직 요원이었다.

 

 

* * *

 

 

 비위가 약했다. 더러운 걸 보면 참지 못하고 구토가 치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 처리 작업이 비일비재한 비밀조직 요원이 된 건 어찌보면 기적적인 일, 다르게 보면 오이카와가 있었던 덕분이었을 것이다. 스가와라의 기억이 닿지 않는 곳부터, 생활은 연장되어 왔다. 기억이 나지 않는 시작과 함께, 조직에 익숙해져야 했다. 남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총을 쏘는 법을 배웠다. 칼을 쓰는 방법을 익히고, 몸을 키웠다. ? 라는 의문이 들 틈이 없도록, 항상 훈련하고 이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오이카와와 함께한 처음이 언제였더라, 아마 17살 때였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 투입되어 마약상을 체포하고 도주 시에 사살 명령이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지시였다.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기억에 스가와라는 몸을 흠칫 하고 떨었다. 그 때만 해도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모두 가르친 것들로 자신을 채워 자신이 들어갈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배운 대로 하면 되겠지. 그렇게 단순한 사고회로와는 달리 신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시간이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다리를 떨다가,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문다. 지시를 기다렸다. 긴장의 순간, 스가와라는 무전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내려진 지시.

 

 “스가와라! 지금 그쪽으로 갔으니까 신호 주면 쏴!”

 

 뒷주머니로 손을 뻗어 다급하게 총을 찾았다. 손이 땀에 흥건히 젖어 총이 자꾸 미끄러졌다. 무전기를 주울 여력은 없었다. 무전기에선 상사의 명령이 귀를 찔렀다. 알겠다고요, 그만 좀...! 이를 으득 간 스가와라는 답이 전해지지 않는 무전기를 향해 짜증을 토해냈다. 생각보다, 실전은 스가와라에겐 아직 무리였다. 그래도 그는 해내야만 했다. 지금이야 쏴! 스가와라의 시야에 과녁이 세워진다. 목표물이 보이고 정 중앙을 쏘면 된다. 장전을 하고 조준하는 것. 이 모든 사고가 끝나야 하는 건 단 5. 후우,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발사.

 

 “야 미쳤어? 지금 뭐하는거야! 빗나간거 안보여?!”

 

 총성이 크게 울려 퍼졌으나 목표물은 이미 조준 범위를 넘어섰다. 총알이 빗나간 모양이었다. 여전히 떨어진 무전기에선 화가 잔뜩 오른 상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총의 반동으로 충격이 가해져 얼얼해진 손을 어루만지며 스가는 식은땀을 흘렸다. 자신이 마지막 기회였다. 뒤쫒으라는 상사의 말은 스가와라에게 들리지 않았다. 총을 쥔 오른쪽 팔을 축 늘어뜨리며 왼쪽 손톱을 잘근잘근 뜯는 데 오른쪽 손에 힘이 들어간다. 누군가 총을 쥔 자신의 손을 잡고 이미 조준범위를 넘어선 목표물로 손을 들어올렸다.

 

 “총은 그렇게 쏘는 게 아니야.”

 “너 뭐야?”

 “총은, 숨을 들이마시고 나를 불어넣는 거거든

 “?”

 “그리고 이렇게, 타앙!”

 

 총격을 흉내내는 그의 음성과 함께 실제 총격이 연속해서 열 번쯤 울렸다. 정자세보다 귀와 가까운 총의 위치에, 다른 쪽 손으로 한쪽 귀를 막을 틈도 없이 쏴버린 총소리가 귀를 찔러 눈살이 찌푸려지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꽉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뜬다. 얼마나 꽉 감았던지 아직 눈 앞이 흐릿하다. 그는 누구고, 이건 무슨 상황인가. 시야가 돌아오려고 눈을 부비적거리자 스가와라의 손을 낚아채더니 입을 떼는 그였다.

 

 “보여? 총은 이렇게 쏘는거야

 

 멀리서지만 피투성이가 된 목표물이 이제야 스가와라의 눈앞에 들어왔다. 죽음으로부터 발버둥치기라도 하는 듯이 스가와라 쪽으로 손을 뻗어 괴상한 신음을 낸다. 깊은 곳으로부터 울렁거림이 치민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무언가를 뱉어낼 곳을 찾다가 구석으로 뛰쳐들어가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우욱, 으으욱, 새벽부터 명령을 전달받아 여태까지 공복인 상태였는데도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시큼하고 쓴 위액만이 입안에 맴돌아 구토감을 더했다. 낯선 이는 다가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본다. 그리고 자신 혼자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아직 이쪽은 한참 부족한 것 같은데

 

 스가와라는 움츠린 상태로 그를 곁눈으로 쳐다봤다. 갈색의 머릿결에 깔끔한 정장차림. 조직 뱃지를 달지 않은 것 보니 조직원은 아닌 것 같은데, 뭐하나 예측할 수 없는 그를 바라보다 또다시 시작된 구토감에 위액을 뱉어내다가 그의 말을 듣는다. 이번엔 좀 더 명확하게.

 

 “, 나랑 같이 다니면 오케이려나

 

 그 말을 끝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가 모습을 감추자 상사가 씩씩대며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표물의 사살된 현장을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자신을 쳐다본다. 스가와라는 재빨리 일어나 하하, 하며 어설픈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까 놓친 거 아니냐며 면박을 준 건 미안하다면서, 상사는 스가와라에게 칭찬과 함께 등을 두들겼지만 스가와라의 머릿속엔 온통 갈색 머릿결의 사내만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었다. 몇일 후, 새로운 조직원이 들어왔다며 환영회를 열 것이라는 연락에 회의실로 가보니 그가 서있었다. 그 때와 똑같은 얼굴과 여유롭다는 표정으로.

 

 “여기는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오이카와 씨.”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다. 그리고 손을 보라는 눈짓을 하더니 길고 가는 손가락이 움직이다가 S자를 그린다. 비밀(secret)이라는 표식. 오이카와라는 이름을 가진 그는 처음부터 비밀 가득히 시작했음을, 스가와라는 잊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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